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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판 - 브랜드와 이미지와 품질

Luckydays 2017. 6. 13. 21:38

 

 국가의 브랜드 가치라는 것은 국가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그 나라의 이름만 대면 딱 떠올리는 상품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국가의 인지도, 이미지, 수출입에 큰 영향을 주죠. 중국하면 공산품을 떠올리고 스위스하면 시계를 떠올리고 일본하면 게임이 생각나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브랜드 가치에 안주해 있다가는 후발주자에게 역전당하는 경우도 왕왕 있기 마련인데요. 이번 글은 와인계의 1인자였던 프랑스 와인의 국치일, 파리의 심판 이야기입니다.

 1. 1970년대 와인 시장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1970년대에도 프랑스 와인은 최고급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어져온 파리의 장인들의 노하우와 축적된 기술 등으로 좋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었죠. 그리고 이런 와인에 대한 프랑스 시민들의 자부심 또한 대단했습니다. 프랑스 와인이 아닌 와인은 와인 취급도 안해줬으니까요.

 한편 미국에서는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질 좋은 포도가 생산되면서, 와인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넓은 영토에서 자라나는 다양한 특징을 가진 포도들과 지속적인 품종 개량, 앞서간 과학 기술을 이용한 미국 와인이였지만, 와인 평론가는 물론이고 소비자들 조차 미국 와인을 외면했죠.

<캘리포니아의 내퍼 밸리를 중심으로 미국 와인이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2. 미국 와인에게 팩트 폭격을 가해볼까?

 1976년, 영국의 와인 평론가 스티븐 스퍼리어는 프랑스 와인과 미국 와인을 비교하기 위해서 블라인드 테스트를 개최합니다. 상표 떼버리고 미국 와인과 프랑스 와인을 마셔서 어떤게 더 좋은 평가를 받는지 한 번 보자는 거였죠. 와인 평론가 10인이 선정되었고, 파리의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블라인드 테스트가 열리게 됩니다.

 개최자인 스티븐 스퍼리어는 물론이고 참여한 평론가 10인 모두 당연히 프랑스 와인의 압승을 예상했습니다. 블라인드 테스트를 연 목적도 "미국 와인이 품질이 좋아졌다지만 프랑스 와인 수준까지는 도달도 못했을 것이다." 라는 걸 재확인하기 위해서 였으니까요. 기자들 역시 "당연히" 프랑스 와인이 이길 것이라 예상하고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유일하게 참석한 기자는 "마침 근처에서 개최되니 공짜 와인이나 마시러 가야지" 란 생각으로 참석했었죠.

 3. 충격의 화이트 와인 시음 결과

 프랑스 와인 업계의 높은 분들로 구성된 평론가 10인이 뽑은 화이트 와인 1위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샤토 몬텔레나가 차지하게 됩니다. 이거만 해도 충격인데, 3위와 4위, 6위도 미국 와인이 차지했죠. 평론가들은 패닉상태에 빠졌고 시음장의 분위기 역시 급격하게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레드 와인 시음에서 평론가들은 대놓고 미국 와인으로 의심이 들면 점수를 팍팍 깎아버리기로 담합까지 하기로 하는데요. 레드 와인 시음이 끝나고 결과가 발표되자...

<미국 와인이 프랑스 와인을 이긴다는,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었죠>

 4. 미국 와인이 돌아왔소! 프랑스 와인을 파멸시키고야 말 것이오!

 1973년 산 스택스 립 와인 셀라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 와인 역시 미국 캘리포니아 산이었죠. 개최자, 평론가, 참가자 모두 경악을 한 결과였습니다. 대놓고 미국 와인에 낙제점을 주려고 했는데, 이런 담합 역시 실패한거죠. 그나마 다행이라면 1위를 제외한 상위권에는 프랑스 와인이 자리잡았다는 점인데... 자국의 와인에 자긍심이 높던 프랑스로서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 위안이였습니다.

 유일하게 참석한 기자인 조지 M. 테이버가 이 시음회를 '파리의 심판' 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대서특필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프랑스 전역에 엄청난 여파가 몰아치게 됩니다. 이 '파리의 심판' 에 참여한 평론가들은 와인과 관련된 관계자로서는 최고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사람들이였는데, 한순간에 매국노 취급을 받게 되고 시음회 주최자인 스티븐 스퍼리어는 (그 의도가 어떻든 간에) 프랑스 와인 업계에서 철천지 원수 취급까지 받게 됩니다. 프랑스와는 앙숙지간인 영국인이라는 시너지까지 폭발해버렸죠.

 5. 프랑스에게 와인이란?

 프랑스에게 있어서 와인이란 단순히 술이 아닙니다. 프랑스는 자기들 나름대로 문화 대국이라고 자랑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프랑스 와인 문화야 말로 프랑스 문화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리고 이런 자칭 문화 대국이 그리하듯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천박하다고 여기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특히나 식민지인들이 시작한 나라인 미국 문화에 대해서는 더 심했죠. 그런데 자신들이 천박하다고 여긴 미국 와인업계에게 자신들의 자랑이자 자부심인 프랑스 와인이 처참하게 박살나 버린 것이죠.

<프랑스인에게 와인은 한국인에게 김치와 비슷한 음식, 아니 그 이상의 문화입니다>

 6. 그리고 터진 삼연벙

 1986년, 2006년에도 미국 와인과 프랑스 와인의 블라인드 테스트가 실시 됩니다. 파리의 심판때와 똑같은 와인을 사용한 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도 프랑스 와인은 미국 와인에 또 다시 패배하게 됩니다. "와인이 숙성되면 결과가 바뀔 것이다" 라는 변명도 통하지 않게 되었고, 프랑스 와인 업계의 이미지는 바닥까지 추락하게 됩니다.

 7.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가?

 와인의 품질은 생산자의 노력과 연구, 그리고 포도가 자라는 곳의 토양이나 기후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와인' 이라는 브랜드만 믿고 노력과 연구를 게을리 한 것이 큰 패배 요인이라고 지적받고 있죠. 반면 미국은 생산자의 노력과 앞서간 과학연구, 그리고 포도를 키우기 좋은 신대륙의 기후와 토양까지 있었으니 미국 와인의 품질이 프랑스 와인의 품질을 따라 잡는 건 시간 문제였던 것이죠.

 8. 결론

 파리의 심판은 브랜드와 가격만 믿고 품질 향상에 게을리 하다가는, 후발주자에게 따라잡히고 시장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대표적인 예시가 되었습니다. (물론 프랑스 와인이 시장에서 낙오되진 않았습니다) 또 흔히 말하는 이름값이 얼마나 부풀려지고 거품이었는지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 사건이기도 하죠. 좋은 브랜드와 이름값은 결국, 좋은 품질에서 나온다는 점과 좋은 브랜드와 이름값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러니까 브랜드 믿고 가격좀 쳐올리지 말라고 치킨업계 새X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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