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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촛불집회 후기

Luckydays 2016. 11. 20. 02:19

 

 11월 19일 토요일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지금 막 밤차타고 내려와서 졸린 눈을 비비고 참가 후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미 촛불집회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내 정치성향은 대강 짐작할거라 예상되니까, 정치적인 이야기는 줄이고 집회에 대해서 내가 느낀점만 써보려고 한다.

 아 그리고 말투는 편하게 할테니 양해 바람 ㅇㅇ

 1. 이렇게 된 이상 광화문으로 간다.

 사실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은 처음부터 있었지만, 하필이면 운전면허 학원이 토요일 아침 ~ 점심 수업이라 도저히 짬이 안나서 못갔다. 그러다가 금요일날 운전면허 시험으로 휴가내고 쉴 시간이 좀 생겨서 이 기회에 촛불집회에 갈 마음을 먹었다.

 내가 사는 천안에서 파티원을 모집하려고 했는데, 과제에 찌들어있는 공대생들은 "내 몫까지 하고 와라" 라는 막중한 책임감만 나에게 주었고, 결국 서울에서 직장생활하는 2명과 같이 파티를 꾸렸다. 나는 전철을 타고 2시간 가량의 시간을 투자해서 서울대입구역으로 갔고 그곳에서 내 친구 1과 같이 합류해서 본격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2. 계획대로....?

 우리의 계획은 저녁을 먹고 6시 30분쯤에 광화문에 도착해서 친구 2와 합류, 행진에 참여를 하고, 나는 새벽까지 참가 후에 PC방에서 밤을 새고 첫차로 내려가고, 친구들은 자정 쯤에 집으로 복귀해서 쉬기로 계획을 짰다.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밥을 먹고 시청역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 그리고 시청역에서 내렸는데...

 우리들의 계획은 여기서부터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몇 년간 살던 내 친구는 시청역에 사람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본다며 놀라워했다. 나는 면접 몇 번과 RR 간담회때만 서울에 올라와봐서 그러려니 했었고..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사람들의 참여 열기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3. 이게 지금 15만명이라고?

 시청역에서 내려서 광화문쪽으로 걸어가면서 내 친구와 나는 뉴스를 검색하고 있었다. 경찰 추산 10 ~ 15만명 정도라는 말을 보고, 나는 한 40만명쯤 왔을거란 생각을 하고 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갔다.

 내 26년 살면서 이렇게 사람 많은건 처음봤다. 지금와서야 깨닫는건데, 이정도의 인파도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모인 집회가 아니라 끝자락에 막 합류하기 시작한 부분이였다.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였다는 것.... 이 곳은 노점상 금지 구역이 아니였는지 양초 파는 분들도 많았고 핫도그나 오뎅, 김밥같이 먹거리를 파는 분들도 많았고 방석과 핫팩처럼 장기전에 대비한 물품을 파는 분도 많았다. 이쯤에서 "박근혜는 하야하라" 라고 써있는 종이도 받았는데, 뒷면에는 집회에 참여해서 고맙다는 문구와 함께 헬스클럽 광고가 써져있었다. 약간은 시장바닥 같은 느낌도 들었다.

 친구 2가 아직 퇴근을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파티는 일단 계속 전진을 하기로 결정했다. 길거리에서 LED 초를 각자 구입한 후에 전망 좋은 곳에서 사진을 찍고 계속 전진을 했다. 간간히 깃발과 태극기가 보였고, 이 수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길거리에 나왔다는 것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려는 찰나...

 저 멀리 이순신 장군님 동상이 보이고, 연설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열변을 토하는 분의 목소리가 들릴 무렵, 내 친구와 나는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갇혔다!" 수 많은 사람을 보고 아드레날린이 너무 솟았던 탓일까. 주변에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우리는 집회 중간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형편이 되어 버렸다. 갇혀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내린 결정은, "일단 계속 전진을 하다가 우회전 해서 빠져나가자!" 였다.

 사진으로 보이는 인구 밀도가 내 전방과 내 후방과 내 좌우측에도 있다는 걸 보고, 경찰에서 집회 인원이 15만명이라고 했던 점이 생각났다. 이게 어딜봐서 15만명이란 건가.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도 이것보다는 적었을거라 확신한다. 더욱더 놀라운 점은 계속해서 인파들이 합류하고 있었다는 것.... 이쯤에서 친구 2의 퇴근소식을 들은 우리 2인팟은 저녁을 못먹은 친구 2와 합류하고 저녁 겸 야식을 먹기 위해서 잠시 집회해서 탈출했다. 탈출 과정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을 하자면 우리 2인팟은 우리의 의지로 걷지 않고 마치 파도에 휩쓸리는 튜브처럼 인파에 휩쓸리면서 간신히 탈출했다.

 4. 저녁 9시 30분, 2차 합류

 3인팟으로 파티원이 늘어난 우리 파티는, 다시 광화문으로 걸어갔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모여있던 거리는, 사람들이 푸른 지붕 집으로 행진을 했는지 아니면 집으로 돌아갔는지, 인구 밀도가 크게 줄어있었다. 우리 의지대로 걸을 수 있었고, 주변의 상황도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건 사람들의 자유발언 이였다. 일정 거리마다 트럭과 마이크를 설치하고 아무나 올라가서 발표를 하고 있었다. 수능 끝나고 왔다는 고3도 있었고, 수능을 앞둔 고2도 있었고, 직장인들도 있었고 대학생들도 열심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었다. 나도 올라가서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대본을 들고 올라가도 발표를 망치는 내 체질상 힘들거라 생각하고 계속 거리를 걸었다.

 내가 거리를 걸으면서 감동을 먹은 지점은 사람들이 열심히 말을 하던 트럭 위도, 손에 들고 있는 촛불도 아닌, 길바닥이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휩쓸고 간 길바닥에는 낙엽말고 다른 쓰레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간간히 보이는 몇몇 사람들은 봉투에 쓰레기를 주워담고 있었고, 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들고 있는 쓰레기를 그 봉투에 넣어주고 있었다. 집회에 나온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였다.

 조금 더 가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경찰 버스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긁어서 떼어내고 있었다. (우리가 저녁을 먹는 사이 경찰과 대치를 했을거란 예상을 했다.) 여기서 진짜 마음 깊은곳에서 우러나오는 웃음과 감동이 밀려왔다. 물론 스티커를 붙인 사람들도 참가자였겠지만, 그 뒤처리를 하는 사람들도 참가자였다. 누군가는 맨손으로, 누군가는 도구로 긁어내는 걸 보면서 시민 의식이 대단하다는 점을 느꼈다.

 5. 파티 해체

 밤을 새고 내려가겠다는 내 의지와는 다르게 결국 내 저질 체력이 먼저 뻗고 말았다. 결국 우리 3인팟은 지하철을 타고 각자 해산하기로 했다. 나는 밤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내려왔고, 친구들 역시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면서 우리는 역사의 중심에 서있었다는 말을 했다. 나중에 친구들과 자식들에게 자랑할 거리가 생겼다고, 역사책을 보면서 뿌듯해할만한 일을 했다고 희희낙락 거리면서 좋아했다. 비록 얼마 안되는 짧은 시간을 위해 장장 왕복 4시간이라는 시간을 소모하긴 했지만, 그 시간이 아깝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비록 촛불을 들고 서있는 것 이상을 하진 않았지만, 나는 내가 그 집회의 한 명이였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지금부터는 찍어놓고 못 올린 사진들


<낙엽 말고는 쓰레기가 보이지 않는 길거리>


<행진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위해 교통정리 하던 경찰분들>


<이번 최순실 게이트의 선봉주자 JTBC 차량과 카메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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